내 이름은 수만이. 영도구를 주름잡고 있는 자타공인 영젤쎄(영도에서 제일 쎄) 강아지다. 내 나이 겨우 만 3세이지만 이미 이 동네를 접수한 지 오래, 드문드문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강아지들은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풀네임은 마리안느 드 수만 생텍쥐페리로, 언니와 엄마아빠가 귀족답고도 모험심이 뛰어나 보이는 이름을 고심해서 골라 지어 주었다. 나 마리안느 드 수만 생텍쥐페리, 내 가족들의 기대에 걸맞는 위엄을 보이려 노력한다!
또한 내 호는 ‘자강’으로, 오늘 언니가 즉흥적으로 지어 주었는데, 언니의 말로는 ‘자유로운 강아지’란 뜻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항상 자유롭고 규율에 구애받지 않는 나의 성격을 관찰하고 지어준 호인 듯하다. 문득 언니가 “똥오줌도 아무데나 싸고 다 지멋대로 하는 자유로운 강아지...”라나 하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지만 그건 아마 꿈이거나 나의 피해망상일 것이다.
오늘은 언니랑 언니네 사촌동생들이랑 같이 나의 나와바리인 엑스스포츠광장에 갔다. 가는 길에 킁킁 다른 개들이 남겨둔 쪽지를 맡아 보니 다들 나에게 안부를 묻고 있었다. ‘수만언니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언제나 언니를 생각하며 털을 잘 다듬어 두고 있답니다.’ ‘수만 양, 자주 만나 뵙지 못해 아쉽습니다.’ ‘수만 언니, 언니를 한 번이라도 뵐 수 있다면 제 견생 최고의 영광이 될 텐데요. 언니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도구를 접수한 언니를 본받고 싶습니다. 부디 언젠가 언니를 직접 뵐 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기타등등... 언제나 나에게 목매는 이 수많은 중생들을 어찌할꼬. 이래서 신은 아마 힘들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해야 이 영도구의 개들의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는데 언니가 자꾸 목줄을 잡아당겼다. 나를 방해하는 것이 좀 짜증났지만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거의 모든 강아지들은 그들을 핍박했던 주인의 행태를 잘 참아내며 그들의 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들 덕분에 성가신 주인을 견디는 것은 개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고, 나도 내 목표만을 위해 달리기보다는 주인과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니가 가자는 대로 고집 부리지 않고 따라갔다.
지나가다 만나는 강아지들 모두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내 외모만 보고 날 알아차리지 못한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킁킁 내 동구녕의 냄새를 맡더니 내가 그 유명한 영도구 깡패강아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훗 역시 언니랑 같이 이리저리 산책을 다니며 도장깨기를 한 보람이 있군. 그런데 어떤 하얀 강아지가 쫄래쫄래 내 옆으로 오는 것이었다. 딱 보기에 어려 보이기에 얘도 내게 인사를 하겠군 싶어 빙글빙글 돌고 있었더니 그 강아지가 겁도 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있잖아, 너 나랑 개껌 공구할래?”
뭐? 이놈의 건방진 강아지가! 멍멍멍멍멍!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까불어! 저 하룻강아지한테 예의란 걸 가르쳐 주려고 깡 물어버리려고 했는데 언니가 안돼안돼안돼!!! 하면서 쫓아와서 나를 붙잡았다. 언니놈아 이거 놔! 저 건방진 것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어!
그랬는데 그 흰 개의 주인이 막 내게 뭐라고 욕을 했다. 저 주인도 솔직히 한주먹거리였는데 내가 언니가 곤란해질까 봐 참았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진짜 강아지 이름도 영심이라고 짓는 주제에 이 자강 마리안느 드 수만 생텍쥐페리에게 뭐라고 하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영심이... 그 이름 내가 기억해두겠어. 오늘 단단히 혼이 났을 테니 다음부터 날 만나면 지 위치를 알게 되겠지.
자강 수 선생,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 앞으로도 나에게 덤비는 강아지들은 깔아뭉개주겠어. 다 덤벼.